자유의 의미…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눅 7:23)

세례 요한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가 정말 메시아인지 의심하는 마음을 품은 것 같다. 비록 예수님은 요한에 대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분명 요한은 자기가 예상했던 메시아의 이미지와 예수님의 모습이 매치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는듯 하다. 어찌 생각하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자기 뜻에 따라 움직이고자 하는 마음… 기독교 상담학에서 말하는 Manipulate 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었는 듯하다.


오늘 수요 예배에서 사카모토 효부 목사님으로부터 이 말씀을 들으며 내 안에 알지 못했던 큰 죄의 유혹이 있음을 깨달았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신 그 사실… 사람에게는 각자에게 두신 하나님의 너무 크고 아름다운 계획이 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자기 유익을 위해… 욕심을 위해, 아니면 심지어 자기의 사역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manipulate)하려는 유혹이 있다. 나에게도 분명 그런 마음이 있었음을 오늘 수요예배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알게 되었다. ‘자유’라는 말. 너무 쉽게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나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할까…? 세례 요한은 감옥에서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자기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보내는 시점에서 참 자유함이 있었을까…? 나는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일까…? 나에게 두신 하나님의 계획을 조금씩 알아가는 지금 시점에서 난 지금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자유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을 내 의지와 생각에 따라 manipulate하려고 하는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 반대의 모습들도 발견된다. 자유하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에 이용당하고 있는 나의 모습. 나를 하나님의 계획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는 마귀의 교묘한 전술이었음을 깨닫는다.


순간 순간의 여러가지 상황에서… 특히 사람들을 대하고 대화하고 협력하는 상황 속에서 이런 교묘한 유혹을 지혜롭게 분별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겠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기도를 생각하며… (눅 22:42)

릭 워렌(Rick Warren) 초청 목적이 이끄는 교회 컨퍼런스


릭 워렌 초청 목적이 이끄는 교회 컨퍼런스
Rick Warren
Purpose Driven Church Conference Seoul

2006년 7월 13일 (목) 오후 7:00 상암 월드컵 경기장
Jul 13, 2006 7:00PM
Seoul Worldcup Stadium.
Free of charch, no registration required.


visit
http://www.disciplen.com/seminar/2006/purpose/schedule_eng.asp
for more information. (english)

you could access seoul worldcup stadium by subway line 6.
get off the train at ‘Seoul Worldcup Stadium’ station.
bus, taxi or han river ferry are also available.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행 4:35)


오늘은 전북은행 프로젝트 관계로 전주에 출장을 다녀왔다. 기차를 타고 용산에서 전주까지, 그리도 다시 전주에서 용산까지 오는 길에 내 옆에 앉았던 3명의 사람이 있다.



용산에서 전주까지 내 옆자리에 앉게된 사람은 순천까지 가신다는 한 할머니였다. 자꾸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는지 이런 저런 이야기, 60년대 완행열차 이야기도 하시고.. 같이 도시락을 사먹으며 간단 간단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 영혼이 느끼고 있던 외로움과 고독을 나도 느낄 수 있었다.



두번째 사람은 돌아오는길 전주에서 대전까지 내 옆에 앉았던 한 대학 강사이다. 정장 차림의 그 사람은 한눈에 봐도 엄청난 스트레스와 인생이 주는 무게에 짖눌려있는듯 했다. 두려워서 차마 그에게 말을 걸지는 못했다.



세번째 사람은 대전에서 용산까지 옆에 앉은 한 아저씨.. 내 옆에 앉자 마자 술냄새가 진동을 했다. 기차를 타는 내내 그는 머리가 아픈지 엎드려 있었다…



오늘 이 세사람을 접하며 내 마음 속에 든 생각은 이 사람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잘 파악할 수 있다면 그들에 대한 접근이 훨씬 쉬워질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할머니도, 대학 강사도, 술취한 아저씨도 분명 내 옆에 앉은 시간동안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 필요를 채워줌으로서 접근한다면… 특히 세번째 술취한 아저씨의 경우 내가 두통약과 생수를 건네주었다면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 집에와서 들여다본 중등부 QT책 말씀은 오늘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줌이라…” (행 4:35) 복음을 전하겠다는 열정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주위 영혼들의 필요를 잘 파악하고 적재 적소에서 필요를 채워줌으로서 그들이 본질인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도록 하는 것… 이것을 위해 지혜와 사람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주시도록 간구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전으로 포장된 욕망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 (중략)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마 4:5~7)


마귀의 그럴듯한 도전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을 보면 그분의 지혜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전병욱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다시한번 접하게 된 예수님의 광야 시험에서 또다른 지혜를 발견한다.



말씀에서 볼 때 마귀의 도전은 매우 그럴듯 하고 생각이 없으면 그냥 넘어갈만도 한 도전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아를 철저히 부인하셨기 때문에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라는 지혜로운 대답을 하실 수 있으셨다.



기독교의 본질은 자기 부인이다. 물론 자기 긍정을 통해 더 깊은 영적인 세계로 나아가고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다. 하지만 그 전에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기 부인이 필요하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기독교에서의 자기 긍정도 결국에는 나 스스로의 능력이 아닌,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계획이다.



대학생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던 일, 찬양팀의 리더가 되고 팀원들을 리드하며 예배를 인도하던 일, 그리고 최근 주일학교 교사로 사역하며 여러 사람들과 부딪치고 사람들 앞에 서게 되는 일을 많이 겪으면서 수시로 이런 마귀의 시험은 나에게 유혹한다. 하나님의 능력인 것처럼, 그분의 은혜인 것처럼, 그분의 계획인 것처럼 나의 개인적인 욕망을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사람들 앞에 드러낼 때의 그 짜릿한 쾌감… 바로 죄가 주는 쾌감이다.



나에게 있어서 그런 유혹의 순간에 붙들 것은 십자가 뿐… 항상 깨어있어 지혜롭게 그분의 일을 감당해 내는 제자가 되길…
 

죄에 대한 승리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요일 3:1)




얼마 전부터 나에게 항상 도전되는 말씀은 요한일서 3장 말씀이다. 그 말씀에 의하면 구원받은 백성은 절대 죄를 지어서도, 아니 지을 수가 없다는데.. 왜 나는 구원받은 후 지금까지 여전히 알게 모르게 죄를 짓고 있는가… 내가 죄인임을 애통하게 고백하며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과 첫사랑의 기쁨, 감격을 누렸었는데 지금의 내 모습은 여전히 죄인이다. 어떻게 보면 누구나 빠질 수 있는 딜레마이다. 요일 3:6~10에는 하나님께 속했다면 절대로 죄를 지을 수 없다고 선언한다. 이건 99.9%의 크리스천에게 엄청난 고민거리일 것 같다.





난 얼마전 한 성경공부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도전을 받았다.  여전히 죄인된 내 모습에 반해, 성경에서는 죄를 짓는다면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라고 아예 못박아 이야기하고 있다. 그 모임에서는 죄의 현상이 있다면 그것은 구원받지 못한 것이라고 단정짓는듯 했다. 한동안 구원에 대한 혼란스러움을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묵상을 통해 새롭게 발견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다. 요일3:1절, 2절에서도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다. 사람이라는 존재의 연약함과 한계는 성경 역사에 걸쳐서 잘 묘사된다. 다윗이 그러했고 바울도, 베드로고 그랬다. 구원받았지만 연약함으로 인해 항상 쓰러지는 모습. 하지만 그들은 죄 자체를 즐기고 먹고 마시지 않았다. 다윗도, 바울도, 베드로도 죄를 극복하고 승리하기 위해 분명 몸부림쳤을 것이고, 범죄했을 때에 분명히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자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에게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즉 마귀의 자식이 죄를 범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아이덴티티가 있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크고 작은 죄문제 하나하나에 대한 죄책감과 쓸데없는 고민 보다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고한 identity인것 같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이런 사소한 죄는 범해도 좋다라는 또다른 자기 합리화의 길을 찾고자 하는것이 아니다. 내가 근본적으로 다른, 새롭게 거듭난 존재라는 것을 항상 잊지 않고 매 순간 순간 삶의 문제와 도전을 상대할때 가장 값진 승리를 맛보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 삶의 기준.. 어느것도 지배할 수 없는..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약 3:14-18)


인생을 살면서 피할 수 없는건 사람들과의 부딪침 같다. 가깝던 친구도 어느 순간 적으로 돌변해버리기도 하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시기와 다툼은 늘 존재하는 것 같다. 사람이 항상 자기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최근에 어떤 일을 겪으면서 과연 야고보서의 저 기준이 삶의 어느 영역까지 적용되어야 하는가 고민하게 되었다. 야고보서의 약속대로 행하자니 나 자신이 참 불쌍하고 내 소원대로 행하자니 사람들과의 오해와 시기 상처는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자존감이 우선인지… 아니면 자존감을 죽여가면서까지 눈에 보이는 화평을 추구해야 할지.. 이런 고민은 솔직히 정답이 없는 것 같다. 무엇이 화평케 하는 것인지는 나의 지혜로는 여전히 알 수가 없다.



단 한가지 확실한 것은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둔다는 것.. 어떻게 해야 화평을 추구하는 것인지는 기도로 지혜를 구해야겠다.



인생에 더는 없을 값진 경험을 하게 하시는 그분께 감사드리며…
 

사람을 얻는 인생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고전 9:19, 개역개정)


바울이 그 인생을 통해 가장 이루고 싶었던 일은 무엇일까?
물론 내가 그 시대에 그와 함께 살아보지 못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그의 인생 최대의 가치관 중 하나는 분명 ‘사람’이었을것이란 생각이 든다.



세상의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뛰어나고 가장 존귀하고 가장 가치있는 존재인 사람.. 한사람 한사람을 ‘우주’라고 표현해도 좋을만큼 하나님의 형상을 그대로 빼다 박은 ‘사람’… 잃어버린 한 영혼이 돌아올 때 천국에서는 잔치가 벌어진다고 하니…



고린도전서 9:19 말씀을 통해 그가 사람을 얻기 위해 스스로 자존심까지도 버렸을 모습이 떠올려진다.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롭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사람을 얻고 더 많은 사람을 구원시키기 위해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고 고백한 바울은 자신의 인생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가장 가치있게 사용한 사람중 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된다.

원수까지 감동시키는 삶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삼상 24:6~7a)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



그에게 찾아온..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위기의 순간 또는.. 결정의 순간에 항상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행동하였을 때 결과적으로는 승리하는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것처럼 내 인생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원리는 의외로 간단한 것같다.






삶에서 부딪치는 수많은 문제들. 그 문제들을 놓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순간 순간 하나님이 주시는 한마디 한마디의 작은 말씀들이 결국 나로 하여금 절대로 삶의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가장 지혜로운 전략적인 삶.. 멋진 인생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 확신한다.






결국 원수인 사울의 입에서 조차 다윗을 향한 찬사가 흘러나오게 되었다.



다윗의 삶이 결국 승리로 끝나게된 원동력이 이것이 아닐까..?



난… 원수까지도 감동시키는 삶을 살고 싶다.

양심에 대한 재발견(?)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요일 3:21)


사람의 마음에는 누구에게나 양심이 있다.
양심은 내 마음 속의 작은 하나님이라고도 한다.
어떤 일에 대한 판단이 자신의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갖게될 수 있는 이유인 것 같다. 물론 자신의 양심이 성경의 가치관대로 올바르게 자리잡아야겠지만…
이 말씀으로 생각할 때 어떤 일이 나의 양심에조차 반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용서와 용납의 하나님을 억지로 끌어들여 자신을 합리화하려고 했던 많은 기억들이 떠오른다.
십자가 복음을 너무 값싼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 예수님은 나의 사소한 죄문제 하나 하나를 위해 그토록 고통당하셨건만…

나를 발견하고 기대하는 2006년

이 글은 여호와앞에 요셉같이 (사랑의교회 중등부 QT책) 2006년 1월호에 실린 원고입니다. 책에 실린 원고는 약간 편집을 거쳤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를 발견하고 기대하는 2006년




2005년 1 1 0. 저는 송구영신 예배에 혼자 와서 이유 없이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앉아 있었습니다. 몇 가지 계획했던 일들의 실패와 사람과의 관계로부터 받은 실망감, 사회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부담감 등
어쩌면 그 눈물은 감사와 찬송의 눈물이라기 보다는 그 동안 받았던 상처와 배신감, 부담감으로 고통 받다가 한 순간 아버지 품에 안겨 서럽게 우는 어린아이의 눈물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라는 찬송가 가사가 어찌나 내 마음을 때리던지



 



한 해를 이렇게 우울하게(?) 시작했지만 지난 2005년의 수개월간 양육과 묵상 속에서 조금씩 나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저에겐 많은 포지션이 있습니다. 사랑의교회 주일학교 교사로서의 나, 대학시절 함께했던 믿음의 친구들 가운데의 나, 9다락방 총무로서의 나, 우리 집 장남으로서의 나, 회사 직원으로서의 나, 어떤 사람을 많이 사랑했던 남자로서의 나, 심지어는 자아도 없이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종이 되기를 자처했던 사람으로서의 나 2005년과 그 전에는 라는 존재감을 갖게 할만한 여러 가지 이유와 포지션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저는 이러한 이유들에서 자유하게 되어 어느 누구도, 어떤 과거도 개입하지 않은, 예수님 앞에 발가벗고 서있는 죄인으로서의 나를 다시 한번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와 사회의 여러 가지 타이틀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발견되는 모습이 아닌 보이지 않는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서 찾아가는 나의 모습. 솔직히 말해서 이건 참 어렵습니다. 니모를 찾아서를 보셨다면 이해하실 수 있겠죠. 마지막 장면에 어항 속에 있던 니모의 친구 물고기들이 극적으로 바닷물로 탈출하고 환호하지만 묶여진 비닐봉지 속에 들어있는 자신들의 모습들을 보고선 Now what?! 이라는 마지막 대사를 남기고 영화가 끝나버립니다. 극적으로 주님을 만나고 구원받아 일단 새로운 영적 세계에 풍덩~ 빠져들었지만 자신의 모습을 확실하게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의 고민 Now what?! 어찌 보면 27살의 어른이 하기엔 많이 늦은 고민이 아닌가 싶고, 주일학교 교사가 어찌하여 이런 고민을 하고 있냐고 손가락질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떻게 사는 것이 주님께 가장 영광이 되는 것인지, 내가 정말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 당장 2, 3년 후에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조차 잘 알지 못하는 27살의 어른은 28살이 되는 2006년에도 예수님과 함께하는 자아 찾기를 계속해야 할 것 같습니다.



 



2006년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저는 기대에 부풀어 있습니다. 그 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나의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하고 기쁨 충만할 일, 새롭게 보이실 주님의 계획들을 알게 되어 소망이 가득할 일,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과 학생들, 새로 맺게 될 관계들을 생각할 때 2005년의 시작에 비교하면 극적 반전이라고 표현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렇듯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승리를 좋아하시나 봅니다. 저는 이 하나님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