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헨리 나우웬의 책 ‘친밀함’ (Intimacy – Henri Nouwen)의 103~108페이지에 걸쳐서 언급되는 ‘소그룹 생활과 우울증’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원래 책에서는 이 부분이 신학교 안에서의 우울증과 딜레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이라 내용이 전체적으로 신학교 안에서의 소그룹에 대한 문제를 진단하고 있는데 요즘 대부분의 교회들과 일부 대형 교회들의 ‘목적성 있는 소그룹’ (또는 특별한 사역을 위한 소모임 등)에도 충분히 적용되는 내용이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소그룹’에 대한 고정 관념을 인간이라는 독립되고 가치 있는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함으로써 재발견하고, 쉽게 빠질 수 있는 몇 가지 문제들을 진단해내고 있습니다. 일단 이 부분에서 문제점들을 찾아내긴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책의 다음 장(이 요약 본에 없음)에서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아래 글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소그룹’의 어찌 보면 당연한 모습을 저자는 잘못된 모습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같은 저자가 자신의 책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에서 이야기하는 교회의 모습과는 또 모순되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저자가 원래 언급했던 내용이 ‘신학교’라는 집단 내에서의 소그룹을 이야기한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성숙한 사람들의 모임, 특별한 목적이나 훈련을 위해 모이는 소그룹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읽어 보시면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2005. 12. 6. 송형기
소그룹 생활과 우울증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소그룹 또는 팀은 수직적인 관계로 인한 비인격적 생활에 대한 반작용으로 볼 수 있다. 큰 집단을 작은 팀으로 나눔으로써 진정한 형제애의 가능성을 창출하며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 생활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대화와 토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부분에서도 언제나 상황은 뜻한 방향대로 움직이지 않는 법이다. 팀 방식이 안고 있는 문제를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문제는 구성원들이 더 이상 서로 피할 수 없다는 단순한 사실이다. 소그룹들의 자생 터전이 되는 큰 집단에서는 못마땅한 사람들을 피하고 생각이 다른 이들과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 모임에도 비교적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다. 반면 팀에서는 소수의 동료들과 아주 가까울 수밖에 없다. 내가 하는 많은 행동은 팀원들의 비판의 눈을 벗어날 수 없으며 거꾸로 팀원들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팀 모임에 가지 않으면 금방 눈에 띌 뿐 아니라 그룹에 대한 흥미나 헌신 부족이라는 질책을 받게 된다. 모임 중에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내가 침묵하는 이유를 알려고 한다. 내가 행하거나 행하지 않는 모든 일들에 개인적으로 깊은 의미가 부여될 수 있다. 그러므로 팀 생활은 분명 대단위 집단 생활보다 요구하는 것이 훨씬 많다. 훨씬 높은 성숙이 필요한 것이다.
둘째 문제는 팀의 의미에 대한 혼란과 관련이 있다. 일반적으로 팀이라는 말은 다양한 장정의 융합을 통해 특정한 과제를 더 훌륭히 수행할 수 있는 소수 사람들의 협력을 일컫는 말이다. 팀의 본질을 결정하는 것은 팀원들의 공통 과제다. 팀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 그것이 업무의 질에 그대로 나타난다.
그러나 사람을 양성하는 상황에서는 팀이 과제 지향적이 되지 못할 때가 많다. 이 경우 흔히 구성원들이 기대하는 팀은 팀원들에게 최선의 생활 조건을 제공하는 곳이다. 마치 바쁜 하루를 보내고 난 뒤 돌아가는 가정과 비슷하다. 바로 여기서 문제가 시작된다. 팀이 과제 지향적이 아니라 자아 지향적이 되기 십상이므로 이제 팀의 문제는 수행해야 할 일의 본질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대인 관계의 본질 때문에 생겨난다. 이 경우 팀 모임은 다분히 아마추어 그룹 치료로 전락하기 쉽다. 팀원들은 서로를 향한 감정을 탐색하려 하며, 혼자 간직하는 것이 훨씬 좋을 많은 문제들까지도 털어놓으라고 부추긴다. 그렇게 되면 팀 모임에는 긴장이 팽배할 수 있다. 개인 문제를 벗어나 공통 관심사로 나아가지 못한 채 자아 중심으로 치닫다가 자아 도취의 경지까지 이를 수 있는 것이다.
퇴행이 전혀 허용되지 않는 문화는 사람들을 파멸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인간은 잠자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일은 잠든 동안에 일어나지 않는다. 우는 것,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 사랑과 미움의 감정을 숨김없이 표현하는 것은 인간의 정신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은 다 진보가 뒤따를 때에만 의미를 지닐 수 있는 일시적 퇴행인 것이다. 형성기에는 퇴행을 허용해야 하며 때에 따라서는 권유할 필요도 있지만, 퇴행이 추구의 이상으로 간주되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어디까지나 이상은 자아에 집착하고, 울고, 내 감정을 다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내 문제를 잊고 내 관심과 주의를 요구하는 일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퇴행적 행동 양식을 장려하는 팀은 본연의 목적을 거스르는 셈이다.
여기서 팀의 마지막 문제가 발견된다. 친밀함과 관련된 것이다. 사춘기 아이들과 청년들은 아주 괴로울 정도로 깊은 외로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는 진이 빠질 정도로 상대에게 매달리는 우정을 통해 이 문제의 해답을 찾으려는 성향이 있다. 이것은 원초적 필요에 바탕을 둔 미숙하고 집착적인 우정이다. 소그룹의 과제는 이들을 깨우쳐 이런 충동적 필요에 더 이상 끌려 다니지 않고 성숙한 자기 인식과 자기 확신에 이르게 해주는 것이다. 그럴 때 우정은 나누고 용서하는 관계로 자라날 수 있으며, 외로운 감정도 성숙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팀을 원초적 필요와 욕심에 따라 움직이는 일개 파벌로 전락시키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어려운 일이다. 많은 구성원들이 스트레스가 무척 심해 친밀함의 집요한 욕구에 이끌려 친구들에게 매달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대개 비현실적인 환상만 자극할 뿐이다.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 친구가 어디선가 날 기다리고 있다가 내 모든 좌절감을 해소해 줄 것이라는 환상 말이다. 팀이 이런 비현실적인 친밀함의 욕구를 채워 주는 방편이 된다면 오히려 큰 해가 될 수 있다.
이렇듯 팀이란 그 책임자들의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 아주 특수하고도 정교한 사역이다. 최대의 위험은 과제 지향적인 팀이 자아 지향적인 오합지졸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집착적 관계는 구성원들의 정신력을 고갈시키며 퇴행 행동까지 부른다. 이런 상황에서 구성원들은 성격이 까다로워져 곧잘 따지고 쉽게 짜증낸다. 인간이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관심을 요구하고 인간이 보일 수 잇는 것보다 더 깊은 동정을 바라는 성향이 나타난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건강의 정도를 넘어선다. 구성원은 자신의 고독을 아주 미묘하게 즐기며 그야말로 버릇없는 아이의 전형적 증상을 보이게 된다.
이런 퇴행 행동에 뒤따르는 가장 보편적이고 전염성 높은 증상이 바로 우울증이다. 그것은 아무도 날 이해하지도 사랑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다는 느낌이요, 묘하게 뒤범벅이 된 애증의 대상들에게 동정을 얻고 싶어하는 욕망이다.
이렇듯 소그룹 생활은 의도와는 정반대로 아주 우울한 생활 방식으로 쉽게 변질될 수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런 감정들이 대게 너무 모호하고 삶 전반에 확산되어 구성원들 자신은 물론 책임자도 문제의 근원을 여간해서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