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본능? 본연의 모습..?

지금까지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지만…

새들은 항상 같은 날개짓으로 난다.

독수리는 날개짓을 거의 하지 않고 날개를 쫙 편 채로 기류를 타고

갈매기는 갈매기 특유의 날개짓이 있다.


갈매기끼리 날개짓을 이렇게 하자고 약속한 것도 아니고,

알에서 깨어나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닌데

갈매기들은 자기들만의 날개짓으로 하늘을 난다.

어느정도 각도로 날개를 꺾고 어느정도 주기로 날개짓을 하는지..

모두가 똑같은 모습..


사람은… 학교나 집에서

이렇게 이렇게 사랑을 하라고 교육받지 않았지만

누구나 거의 비슷한 방법으로 사랑을 느낀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왜 이렇게 똑같은 모습으로 사랑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여행을 하면서 본 갈매기떼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음.. 하나님이 지으신 모습이 이대로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지금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자기가 지음받은 본질대로 사랑을 하고,

아무리 상처가 많아도 또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바로 사람인것 같다.


만약, 난 상처가 너무 깊어서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면… 그건 자기가 자기 자신이기를 포기하겠다는 말이나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맞는듯..

人生이 곧 사랑이고…

사랑이 곧 人生이기 때문에…^^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 1:26)




2006년 11월 경주 여행중에….

마음문=자동문?

지난 수요일날 MBC라디오 친한친구에서 에픽하이 타블로의 말..

사람의 마음 문이 자동문이었으면 좋겠어요~

다가갔을때 영업중이면 자동으로 열리고..

영업중이 아니면 열리지 않고..

회전문.. 그거 아주 나쁘죠ㅋㅋ

살짝 들어갔다 운나쁘면 다시 나와야되는..


계3:20 말씀이 떠올랐다~

사람의 마음문은 절대 자동문이 아니라는 사실..!

각자의 마음문의 열쇠는 각자가 갖고 있는것 같다.

혹.. 아무리 다가가도 열리지 않는 문이 되어도 어쩔 수 없는건…

그 문의 열쇠는 내가 갖고 있지 않기 때문…

예수님조차도 그 문을 스스로 여실 수가 없다.




 

“Even Jesus Christ can’t get through this closed door
unless you open up.”

2006. 8. Lomo LC-A / Kodak 400 2006 Hyung Gi Song

A Love-Giving Life

2005년은 나에게 있어서 여러가지 변화를 맞게되는 한해이다. 길고 길었던 학생이라는 타이틀을 떼고 경제활동을 하는 사회인으로 첫 발걸음을 내딛은 한해가 되고, 개인적으로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정리가 필요하기도 했다. 신앙 생활에 있어서도 2005년 2월 마지막주 부터 교회에서 중등부 교사로 봉사하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한 영혼에 대한 소중함과 그로 인한 부담감을 동시에 느끼면서 다시금 영혼을 살리는 일에 동참하게 되었다.
내가 주일학교 교사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다. 대학교 학부 시절 열악한 환경 속에서 캠퍼스 복음 사역에 동참하고 찬양팀을 인도하며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신앙 안에서 많이 강한 사람으로 변화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모든것이 풍족한 사랑의교회로 옮기고 대학부라는 공동체에서 섬김만 받으며 있다 보니 어느새 영적인 긴장감은 풀어지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선명한 이미지는 점점 흐려지는 것 같았다. 그때 부터 기도를 했던 것이 주일학교 교사였지만 역시 무언가를 결단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2003년부터 교사에 대해 생각이 있었다. 2003년 가을에는 교회에서 하는 교사 훈련원에 등록해서 훈련도 받기도 했지만 2004년 초 호주 연수를 핑계로, 그리고 그해 말에는 대학원 논문을 핑계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피하기만 했다. 언제나 그렇듯 마음은 편하지가 않았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그 어느때보다 확실했다. 마음으로 밀려오는 부담감을 더이상 피할 자신이 없어 아직 적응조차 하지 못한 직장 생활에 대한 부담감을 떠안은 채 중등부 교사에 자원을 했다.
처음 교사를 시작하면서 맡은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는 한마디로 한창 까부는 아이들이다. 특히 우리반 아이들 중에는 다른 선생님들도 인정하는 ‘이상한’ 아이들이 둘씩이나 있다. 말과 행동을 보면 기본적으로 반항 기질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아이들을 앉혀놓고 말씀을 가르치고 말을 시키고 올바른 대답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어 보였다. 이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쉽사리 생기지 않았다. 기도를 하고자 해도 기도 역시 되지 않고 교회에서 만날때는 일단 한숨부터 나오는 상황이었다.
4월 5일은 중등부 전체가 옛날식으로 가족 운동회를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우리반 학생들은 전원 나오지 않았다. 회사가 갑작스럽게 바쁜 상황에 내가 응원 단장 역할까지 하게 되어 아이들을 챙기는게 쉽지가 않았는데 막상 운동회에 아이들이 나오지 않으니 처음으로 아이들에 대한 섭섭한 마음과 미안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날 운동회가 끝나고 교회 기도실에서 기도를 하며 아이들이 단 한명도 나오지 않기까지 아이들에게 관심가져 주지 못한 것에 대해 회개 기도를 하면서 답답한 마음을 쏟아놓았다. 다른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고 품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두번씩이나 사랑하는 사람으로 부터 거절당한 후, 다른 사람을 절대로 먼저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까지 했던 상황에서 역시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어려운 문제였다. 이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마음속의 상처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데 많은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기도실에서 기도를 하며 얻게된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 ‘사랑을 주는 것은 너의 은사다. 내가 너를 사랑 주는 인생으로 빚겠다.’ 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너무 분명히 말씀하시는 이 하나님의 약속의 음성에 확신을 갖게 되면서 그때 부터는 마음 속의 상처를 뛰어 넘어 반 아이들을 마음속에 품고 진심으로 기도할 수 있는 기도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 실제로 ‘이상한’ 아이중 한명은 그 이후 조금씩 나에게 신뢰의 표현을 보이기 시작했고, 장난의 형식이지만 내 관심을 더 끌려고 하는 듯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표현 방법이 엉뚱하지만 이제 조금씩 서로 마음을 열어가는 단계에서 이를 잘 핸들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교사의 역량은 바로 이때 나타나는 것 같다. 마음이 열렸으니 행동 양상이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에 개의치 않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끝까지 사랑을 배풀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사랑을 준다는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나이가 서른이 가까워져 가는 나 조차 중학생 아이들에게 언제 상처를 받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사랑 주는 인생’이라는 나에게 두신 하나님의 마스터 플랜의 한 과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어떤 상황이라도 극복할 수 있는 이유가 나에겐 있다. 오늘도 하나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You’re gonna be living a love-giving life.”


2005년 4월 16일

비오는 날엔

2003년 6월 23일 (흐리고 비)

세월이 지날수록 빛바랜 사진처럼

기억 저편으로 멀어지지만

빛바랜 사진 한장조차 남기지 못한

진한 아쉬움으로

기억의 저편에서 다시 조각되어 지는

첫사랑의 기억….

아니 이제는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