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되고.. 딸 이름 짓기

2011년 5월 30일은 내가 아빠가 된 날이다.. 작년 가을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 그리고 특히 올해 초에 아기가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이후부터 아이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정말 고민 많이 했다. 처음에 난 주희(主喜)라는 이름으로 지어주려 했는데 사람들 반응이 너무 시큰둥하고 특히 아내는 극구 반대를했다. 고등학교때 주희라는 친구가 있어서 주희 하면 그 친구 이미지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ㅠㅠ 그냥 밀어부칠까 하다가 양보를 하고 다른 이름을 또 고민하기 시작했다.

유나 출생등록 직후 주민등록등본

난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아이 이름을 지을 때 이런 원칙을 갖고 만들어야지 하고 생각했던게 있다. 1) 일단 이름은 무조건 예뻐야 한다. 이름 때문에 놀림거리가 되거나.. 그런 불필요한 상처의 계기를 만들 필요는 없기 때문에.. 2) 그리고 부르기 쉬워야 한다. 한국사람이 부르든 외국인이 부르든 발음이 쉬워야 더 친근감이 생기는것 같다. 3)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경적인 의미와 구체적인 성경 백그라운드가 있어야 한다. 내 신앙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말씀이면 더욱 좋지 않을지..

이런 조건을 갖고 꽤 오래 고심한 끝에 유나라는 이름을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한문으로는 柔娜인데 “부드러울 유”, “아름다울 나”이다. 한문으로 볼 때는 이런 뜻이다..  마음이 온유한 사람, 그리고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 (게다가 외모도 아름다우면 땡큐..ㅎㅎ)

그런데 사실 숨겨진 속뜻은 따로 있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깊이 빠졌던 말씀중에 요12장이 있는데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드렸던 부분이다.  요21장도 내게 정말 큰 의미있는 말씀인데 이건 베드로가 다시 찾아오신 예수님께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다. 만약 나중에 아들이 나오면 요21장에서 이름을 한번 생각해보기로 하고.. 요 12:3 말씀에서 두글자를 따서 유나라는 이름이 나온 것이기도..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요 12:3)

조금 억지 같기도 하지만 유나란 이름은 마리라의 “향 곡 순전한 드”에서 따온 것이기도 하다. 유나가 이 말씀의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가장 많이 사랑하고 예수님을 닮은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한다.

우리 부모님과 장모님께서 이쁜 이름 여러개를 추천해주셨는데 사실 아빠의 신앙의 큼직한 부분에서 나온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는것 같다.

배우자를 위한 구체적 기도를 멈춰라?!

배우자를 위한 구체적인 기도에는 내 욕심이 들어가기 쉽다. 금주 로또복권의 번호를 구체적으로 알려달라고 기도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돈벌이의 수단으로 복권의 행운을 기대하는 자체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부동산 투기가 크리스천에게 합당하지 않은 일인데도 몇 평짜리 아파트를 달라고, 혹은 이번에 어느 신도시에 한 채 더 당첨되게 해 달라고 구체적으로 기도하곤 한다.


1.
우리는 가끔 어떤 말이나 교훈에 대해 성경보다도 더 권위있고 신빙성 있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마음에 담아두고 명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말들은 크리스천들 사이에서 떠돌아다니는 것도 있고, 명저자의 글귀, 노래가사 등도 있다. 예컨대 ‘휴거’라는 단어가 성경에 있는 것으로 알고 그 단어 자체에 신비한 느낌을 가지거나, 마가나 누가가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한 사람인 것으로 착각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말들 중 하나가 “배우자에 관한 기도는 구체적으로 하라”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나는 이 말에 반대한다. 여러 이유로 이렇게 가르치는 분들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말이 다소 인본주의적이고 성경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개인적 견해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주변에서 보면 배우자 기도가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간증을 듣게 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어떤 여자는 배우자의 키와 몸무게까지 기도를 했는데 그조차도 응답을 받았다고 놀라워했다. 그런 간증은 나름대로 귀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나… 미안하지만 이런 이들은 신앙이 아직 어린 단계가 아닌가 생각한다.

위의 응답 받았다는 여자도 준수한 키와 몸무게를 구해서 응답 받았다고 했는데, 이처럼 어떤 여자든지 아마 모르긴 해도 키 162에 95킬로의 남자를 놓고 기도하진 않을 것 같다. 알다시피 세상의 거의 모든 남자들은 오차범위 내에서 비슷비슷한 키와 몸무게의 여자를 원한다. 여자들도 남자의 경제력이나 키 등에 집착한다. 그러면 다들 비슷한 기도를 하게 될 것이고, 이거야말로 축구에서 상대팀에도 기도하는 선수와 어머니가 있는데 우리 팀이 이기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애매한 일이다(이럴 때는 하나님도 “에이, 모르겠다. 니들 맘대로 차라”고 하셔서 실력 있는 팀이 이기는 거라던가?).
장애인과 결혼해서 헌신적으로 살아가는 귀한 사람들이 있다. 이 분들은 어떻게 기도했을까. 감히 추측해 보건대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구체적이든 막연하게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좋은 배우자’를 위해 기도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다. 하나님은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부족한 자녀를 위해 그들을 예비하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 뜻과 하나님의 뜻 사이에서 결정은 어떠해야 할까.





2.
내 예전 직장 선배는 결혼과 동시에 해외에 나가는 것이 오랜 꿈이었는데, 마침 미국 어느 곳의 지사에서 근무하게 될 남자를 만나서 기도가 이루어졌다고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또 다른 사람은 그런 조건을 바라며 찾은 신랑과 함께 유학을 갔는데 몇 년 후 이혼을 하게 됐다. 알고 보니 미국에 가는 조건 외에는 너무나 형편없는 남자였고, 비상식적인 시댁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녀는, 미국에 가려고만 했지 신중함이 없었던 결정에 대해 후회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신체적 금전적 조건이 아니고 성품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어떨까. 물론 가능하다. 하지만 기도로 그렇게 딱 맞는 사람을 데려다 주시거나 주변 후보들의 성격이 돌연 바뀔까? 그럼 맞는다는 의미는 또 무엇일까. 거의 모든 사람들은 신중하게 고르고 골라서 배우자를 선택한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문제를 만나고, 너무 안 맞아서 도저히 못살겠다고 한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잘 할 것처럼 생각하지만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누구나 단점이 있고 결혼으로 하나님이 맺어주신 이유는 서로 보완하며 잘 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배우자도 일종의 달성목표이거나 도달해야 할 타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일단 누군가를 찍으면 ‘저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며 그 주변을 일곱 바퀴 돌아 무너뜨리려 한다.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라는 말에 너무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삭도 야곱도 룻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예비된 배우자인 리브가와 라헬과 보아스를 만났다.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해 오랫동안 종살이를 하고 고난을 겪으며 ‘아내 쟁취’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 앞에서 그의 유별난 성품을 연단 받은 것이다. 배우자의 조건을 골라서 내 입맛에 맞추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으려니와 옳지 않은 생각이다. 내가 변화받고 연단받아 하나님과 사람 앞에 합당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이다. 결혼은 자기의 꿈을 이루는 도구가 아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하듯 결혼도 두 사람이 함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통로가 돼야 한다.

3.
유대인들은 기도와 눈물로 오랜 기간 메시아를 기다렸다. 지금도 그러고 있다. 그들은, 예언된 대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고, 다윗의 혈통이어야 하고, 세상의 왕으로 정치적 능력을 지녀야 하고… 이런 구체적인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메시아를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모든 예언은 물론 수백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진정한 메시아였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영안이 없었다. 예수님은 그들의 진정한 신랑이었건만, 그들은 구체적인 조건들을 따지면서 예수님이 진정한 의미의 유대인의 왕임을 알아보지 못했고, 그저 선한 것이 나올 리 없다고 믿는 나사렛 땅의 목수로만 여겼으며, 흠모할 만한 것이 없는 그의 외모와 조건에 마음을 닫아 버렸다. 그 결과 그들은 폭도가 되어 하나님의 독생자인 메시아를 죽이고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 민족이 되고 말았다. 그들의 영적으로 강퍅한 마음은 끝내 세상의 왕이며 정치적 해결사인 마지막 때의 적그리스도에게 환호를 보내는 최악의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보내신 배우자도 본인이 거부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러나 그 대가는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 된다. 구체적 조건 너머에 있는 가능성과 눈에 보이는 상황 너머에 있는 잠재성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한다.


4.
배우자를 위한 구체적인 기도에는 내 욕심이 들어가기 쉽다. 금주 로또복권의 번호를 구체적으로 알려달라고 기도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돈벌이의 수단으로 복권의 행운을 기대하는 자체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부동산 투기가 크리스천에게 합당하지 않은 일인데도 몇 평짜리 아파트를 달라고, 혹은 이번에 어느 신도시에 한 채 더 당첨되게 해 달라고 구체적으로 기도하곤 한다. 하나님은 이런 기도에도 응답하실 때가 있다. 그들의 수준에 맞는 은혜를 주신 것이다. 콜라가 해롭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은 어쩔 수 없이 사주게 되는 것이 부모이다. 그럴 때면 아이들은 우리 엄마 최고하며 고마워 하겠지만, 부모는 아이가 맛 없어도 몸에 좋은 밥이나 야채도 잘 먹고 튼튼한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언젠가 깨달을 날을 기다리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응답을 해 주시지만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기도는 모든 것을 다 맡기며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는 기도이다.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믿는다면, 늘 가장 좋은 것으로 채우길 원하시는 내 아버지라는 것을 안다면, 적당한 때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주님 보시기에 좋은’ 배우자를 주실 것으로 믿고 다 맡기라.


예수님도 정말 피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당신이 원하시는 길이 있었지만,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길 원한다고’ 기도하셨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결혼은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성도들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신부로 인정하실 때 우리의 조건을 보고 택하지 않으셨다. 아마 조건을 따지기 시작했다면 누구도 쉽게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거나 구원을 받아 천국혼인잔치에 초대받지 못했을 것이다. 구원, 즉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은 어떤 조건이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고 값없이 받는 선물이다.

배우자 기도는 꼭 필요하지만, 그 내용은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멋지고 아름답고 성격도 좋은 킹카를 꼭!! 주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진정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내게 꼭 필요한 귀한 사람을 예비하셨다가 보내시면 순종하겠나이다… 예수님처럼 이렇게 기도하라.
‘그런데 기왕이면…’ 하고 끝에 토 달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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