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열쇠

2010년 11월 6일 GPTI 경건회 인도

[1]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3]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창 26:1-4)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인생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과 우리의 인생 여정에 대해 묵상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실 젊은 제가 인생의 선배님들 앞에서 인생을 이야기하는 것이 우스워 보일 수 있지만 이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번 우리 인생 각자에 두신 하나님의 의미와 목적을 함께 묵상해볼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이 말씀은 지난 주 QT를 통해서 묵상하게 된 말씀입니다. 말씀에서 하나님은 이삭에게 아버지에게 하셨던 축복을 동일하게 약속하십니다. 3절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그리고 4절에서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한가지 조건을 달고 계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절에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저는 이 말씀을 보며 마치 하나님께서 이삭의 아버지 아버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의 말씀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창12:1-2 말씀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거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서는 대를 이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땅으로 계속하여 아브라함과 그 자손을 인도하고 계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어느 한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걸쳐서, 아니 대를 이어서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하나님의 이 약속의 말씀이 있은 직후 26장 전체에 걸쳐 이삭은 방향을 잃은것 같습니다. 흉년 때문에 처음으로 가나안 땅을 떠나서 그랄에 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삭은 그곳에서 한 때 풍년이 들어 그 해에 백배나 얻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거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요즘 투자를 해서 2배로 불리기도 거의 불가능한데 한 해에 백배나 불렸다니 정말 엄청난 축복인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축복의 핵심은 아니라는 것은 제 3자인 우리가 볼 때 너무나 자명합니다. 이삭은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순종의 땅 순종의 장소에 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삭은 그 이후에 아비멜렉의 시기를 받았습니다. 아비멜렉이 소중한 이삭의 우물을 막아버렸습니다. 우물이 막혀 버렸으니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삭은 우물을 파면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고, 막히고, 쫓겨자기를 여러번 반복해야만 했습니다. 사실 창세기에 이삭의 생애에 대해서는 26장에 나오는 것이 거의 대부분인데, 26장의 대부분이 이러한 방황처럼 보이는 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과정이었습니다. 23, 24절에서 이삭이 결국 브엘세바로 올라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이삭에게 축복을 약속하시고, 이삭을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끝내 인도함을 받고 나서는 그동안 갈등이 지속되던 아비멜렉과 화해 협정이 체결되었고, 그곳에서도 역시 우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의 말씀을 이삭과 그 자손들의 생애를 통해서 계속하여 성취해 가시는 한 단편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끝까지 요구하셨던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있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통해서 볼 때 인생의 열쇠는 내가 하는 일이나, 나의 능력이 아니라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알고 끝까지 그 곳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 그것이 인생의 열쇠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나의 일과 능력에 집중한 나머지 우물파는 일, 100배 불리는 일에 내 모든 것을 걸기도 합니다. 그것이 인생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지만 그것에 매어 달릴 수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분명 있을 것입니다. 사소한 것이 될 수도 있고, 중요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에서 얼마나 빨리 벗어나고 자유케 되어 정확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느냐가 성공적인 인생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겪었던 일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자전거를 즐겨 탑니다. 출퇴근도 주로 자전거를 이용합니다. 몇 주 전 팀에서 회식을 하게 되었는데 회식 장소는 회사에서 8km 정도 떨어진 어느 식당이었습니다. 그 식당에서 봉고차를 보내주었지만 저는 자전거를 타고 그곳까지 갔습니다. 처음 가는 길이라 지도 검색 프로그램에서 그곳까지 자전거로 가는 빠른 길을 찾아서 스마트폰에 저장시킨 후 그 길을 따라서 자전거를 타고 달렸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길이 좋았지만 점점 어두 컴컴한 골목길로 가더니 급기야 골프장 뒤쪽으로 있는 칠흑같이 어두운 산길로 가야 했습니다. 거의 등산을 하다시피 하는 산길이라 너무 힘이 들었고, 아무도 없는 산속을 자전거를 끌고 가느라 너무 무서웠습니다. 이 길이 과연 맞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순간 순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목적지까지 가는 길을 직접 검색했고, GPS를 볼 때 내가 지금 그 경로 위에 있는 것과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분명히 맞다는 것은 확실했기 때문에 어찌 되었든 계속하여 GPS를 확인해가며 나아갔습니다. 결국 산길이 끝나고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진 신나는 내리막을 달릴 수 있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 식당에 도착해서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일을 통해서도 깨달은 것은 내가 순간 순간 하나님의 인도하심 위에 서 있는가?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은 저의 내면에 항상 메아리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특히 이번 GPTI 훈련도 이제 중반기로 접어들었고, 많은 사람들과도 익숙해지고, 다양한 숙제와,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매너리즘에 빠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매주 숙제를 하고 보고서를 쓰는 것이 이제 조금씩 우물 파는 일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잇었습니다. 아무래도 제 마음 속에 이 훈련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던것 같습니다. 훈련 프로그램과 숙제가 저의 우물 파는 일이 되고 있었습니다. 사실 훈련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이 훈련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훈련이 끝난 뒤 어디가 되든지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우리가 있어야 할 우리의 가나안 땅으로 계속하여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해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는 저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물 파는 것에 목숨걸지 말게 하시고 어떤 포기와 내려놓음이 있다 하더라도 끝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갈망과 소원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어항 속 인생

사람의 인생은 어항 속 물고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어떤 허름한 식당에 갔는데 그곳에 정말 작고 귀여운 열대어들이 있는 어항이 있었다. 어항이 꽤 컸다. 정말.. 손가락 마디도 안되는 물고기 수십마리가 헤엄치고 있는데 신나서 왔다갔다 하는 애들도 있었고.. 조용히 숨은듯 가만히 있는 애들도..


그 어항을 보면서 어쩌면 사람 인생이 뭔가 대단해보이기도 하고 정말 절망적인것 같기도 하지만 결국 하나님이 보시기에 모두 똑같은 어항 속 물고기..

사람들을 보면 이미 성공해서 승승장구하는 인생도 있고.. 하나님 안에서 좋은 비전을 품고 그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있고, 절망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인생도 있는데.. 어항 밖의 내가 봤을 때 그 물고기들 각자가 얼마나 잘나고 얼마나 못났든 결국은 내가 밥을 주면 먹고 안주면 굶을 수밖에 없는 물고기다. 내가 방의 불을 끄면 물고기는 밤이 되는거고 불을 켜면 낮이 되는거다.. 큰맘 먹고 어항을 청소해주면 더 좋은 환경 더 깨끗한 환경에서 살 수 있는거고 내가 귀찮아서 그냥 가만히 있으면 더러운 물 속에서 힘겹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우리가 어리석어 보일까.. 뭔가 커다란 믿음의 체험을 하고 의기 양양하게 간증을 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내가 그냥 손 하나 까딱 해서 굶고 있는 물고기에게 밥을 조금 준 것 뿐인데.. 어항이 너무 더러워서 청소해준 것 뿐인데.. 그러시는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나의 세상은.. 이 넓은 아름다운 지구.. 작년 유라시아대륙 육로여행을 하면서도 느낀거지만.. 그리고 광활한 우주 정말 끝이 없을것 같은 내 인생.. 물고기도 그렇게 느끼겠지..? 크고 넓은 어항, 그럴듯한 수초, 자갈, 때마다 공급되는 먹이, 밝은 조명, 산소를 공급해주는 공기방울까지.. 그것이 my world..이다


다윗이 시편에서 고백했던 수많은 시들.. 사람이 무엇이관대… 이런 마음으로 고백하지 않았을까.. 광야에서 하룻밤 묵기 위해 쳐놓은 천막에 누워서 두려운듯한 눈빛으로 하늘의 별을 쳐다보며 느꼈을 그 경외심 두려움 그리고 무한한 사랑.. 나도 항상 그렇게 살고 싶다. 그래.. 내가 지금 좋은 회사에 다니고.. 좋은 교회에 다니고 좋은 사람도 있다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라고.. 이런 마음이 겸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