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눌린듯한 일본인의 감정

요즘 일본 지진 쓰나미에 원전 위기까지 말이 아닌데 한편으로 더 놀라운건 일본 국민들의 자제력인것 같다. TV에서 뉴스를 보면 사람이 죽고 가족을 잃어버리고 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같았으면 대성 통곡에.. 분명 누군가 원망의 대상.. 슬픔을 쏟아놓은 누군가를 찾고 난리가 아닐텐데 일본은 그런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것 같다.

언론에서는 일본 민족의 놀라운 침착함과 자제력을 칭찬하고 놀라워하지만 난 솔직히 그 뒷면에 가려진 일본 민족의 억눌린 감정과 어두운 부분이 더 많이 보이는것 같다. 이런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감정의 표출은 오히려 더 건강한 것일 수도 있을텐데… 이런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상처와 억눌림과 영혼의 부자유함이 나에게는 느껴진다. 어쩌면 그래서 일본에 묻지마식의 살인사건이 많이 일어나는건 아닐까…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된다’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원자로의 콘크리트 격납 용기같은 단단한 껍데기 안에 나의 감정을 꼭꼭 가두어 두라는 말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일본 근대사의 굵짉했던 시기에 만들어진 이 민족의 왜곡된 자아가 치유되었으면 좋겠다.

방금 내 일본인 친구 hirose emi가 이번 지진 사태에 대해서 facebook에 남긴 말에는 이 말이 있다.. “i’m tired of smiling in public. i am crying now…..” 아.. 아무튼 이번 지진 사태는 정말 안타깝고 마음이 무너진다.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만드시는 하나님.. 환란에 처한 일본 땅에도 새 일을 행하시옵소서…!

 

 

하늘의 언어

작년 가을 선물로 받았던 김우현 감독이 쓴 하늘의 언어라는 책을 그동안 GPTI 훈련 독서 과제로 미뤄오다가 오늘 1주일만에 다 읽었다. 나 치고는 꽤 빨리 읽었는데 그만큼 내용이 지금까지 내가 선입견이나 고정 관념으로 묶여있던 것들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어서 너무 재미있었다. 방언이라는 것에 대해 나 같은 백그라운드가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거부하거나 하찮게 여길 수 있을것 같은데 여러가지 경험들을 통해 풀어나가는 이 책은 너무 재미있어서 졸려서 눈이 감기기 전에는 손에서 놓기가 어려웠다.

하여튼 결론적으로 김우현 감독님에게 주셨던 방언에 대한 (성경적, 경험적) 통찰력을 이 책을 통해서 나에게도 주신 것이 감사하고 나도 초대 교회 성도처럼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에 대해 진지한 소원을 갖게 되었다. 책의 내용에서 분명히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열정과 지성으로 충만하다고 해도 이 마지막 때의 현실을 돌파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건 분명한것 같다. (책에서 표현한건 다른데… 어딘지 찾기는 힘들고.. 밑줄을 치면서 읽을껄..)

난 방언을 하지 못해서 잘은 모르지만 방언이라는 것이 일종의 현실적, 영적 현실로 부터의 도피처가 되는건 바람직하지 않는것 같다. 책에서 말하는 내용에는 분명 나의 세계관이나 신학에 부대끼는 부분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나와는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마음을 열고 진지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도 역시 GPTI 훈련으로 만들어진 체질 덕분인것 같다.

잘 읽긴 읽었는데 아직은 좀 두려운 구석도 있고.. 과연 내가 기도한다고 책에서 처럼 똑같이 될까 하는 생각도 있고 아직 그런 기도는 하지 않고 있는데 솔직히 책 속에서 김우현 감독님을 통해 방언을 받은 사람들이 부럽긴 하다. 아무튼 김우현 감독님을 통해 주신 방언에 대한 통찰력은 정말 대단하다.

새로운 통일관

(2006. 9. 21. YM목요모임 설교 요약)

우리가 가져야할 통일과 통일 한국에 대한 시각…

통일 후의 통일 한국은 남한의 연장도 아니고 북한의 연장도 아니다. 그렇다고 남한과 북한을 적절히 섞어 놓은 듯한 국가도 아니다.

통일 이후의 한국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이 되어야 한다.

brand new nation. whole new nation..

지금까지 나.. 그리고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통일에 대해서.. 우리가 북한을 거의 흡수하는 방식의 통일.. 그렇기 때문에 통일 한국은 남한의 연장선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박혀 있었던것 같다.

하지만…

19세기 말 일본 제국주의로 부터 시작해서..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세계 열강들에 의해서 타의적으로 분단되어 버린 우리가 냉전의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남한’ 또는 ‘북한’… 이 둘 중 하나에 기반한 나라를 통일 한국의 모델로 삼는다면 그건 과거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되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완전히 새로운 통일 한국을 건설하는 일…

이런 전략으로 통일에 대해 접근한다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건 담대함이다.

우리 자신의 힘을 믿지 않고 갈렙과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승리하는…

인생의 열쇠

2010년 11월 6일 GPTI 경건회 인도

[1]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3]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창 26:1-4)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인생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과 우리의 인생 여정에 대해 묵상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실 젊은 제가 인생의 선배님들 앞에서 인생을 이야기하는 것이 우스워 보일 수 있지만 이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번 우리 인생 각자에 두신 하나님의 의미와 목적을 함께 묵상해볼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이 말씀은 지난 주 QT를 통해서 묵상하게 된 말씀입니다. 말씀에서 하나님은 이삭에게 아버지에게 하셨던 축복을 동일하게 약속하십니다. 3절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그리고 4절에서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한가지 조건을 달고 계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절에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저는 이 말씀을 보며 마치 하나님께서 이삭의 아버지 아버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의 말씀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창12:1-2 말씀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거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서는 대를 이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땅으로 계속하여 아브라함과 그 자손을 인도하고 계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어느 한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걸쳐서, 아니 대를 이어서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하나님의 이 약속의 말씀이 있은 직후 26장 전체에 걸쳐 이삭은 방향을 잃은것 같습니다. 흉년 때문에 처음으로 가나안 땅을 떠나서 그랄에 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삭은 그곳에서 한 때 풍년이 들어 그 해에 백배나 얻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거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요즘 투자를 해서 2배로 불리기도 거의 불가능한데 한 해에 백배나 불렸다니 정말 엄청난 축복인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축복의 핵심은 아니라는 것은 제 3자인 우리가 볼 때 너무나 자명합니다. 이삭은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순종의 땅 순종의 장소에 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삭은 그 이후에 아비멜렉의 시기를 받았습니다. 아비멜렉이 소중한 이삭의 우물을 막아버렸습니다. 우물이 막혀 버렸으니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삭은 우물을 파면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고, 막히고, 쫓겨자기를 여러번 반복해야만 했습니다. 사실 창세기에 이삭의 생애에 대해서는 26장에 나오는 것이 거의 대부분인데, 26장의 대부분이 이러한 방황처럼 보이는 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과정이었습니다. 23, 24절에서 이삭이 결국 브엘세바로 올라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이삭에게 축복을 약속하시고, 이삭을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끝내 인도함을 받고 나서는 그동안 갈등이 지속되던 아비멜렉과 화해 협정이 체결되었고, 그곳에서도 역시 우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의 말씀을 이삭과 그 자손들의 생애를 통해서 계속하여 성취해 가시는 한 단편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끝까지 요구하셨던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있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통해서 볼 때 인생의 열쇠는 내가 하는 일이나, 나의 능력이 아니라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알고 끝까지 그 곳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 그것이 인생의 열쇠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나의 일과 능력에 집중한 나머지 우물파는 일, 100배 불리는 일에 내 모든 것을 걸기도 합니다. 그것이 인생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지만 그것에 매어 달릴 수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분명 있을 것입니다. 사소한 것이 될 수도 있고, 중요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에서 얼마나 빨리 벗어나고 자유케 되어 정확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느냐가 성공적인 인생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겪었던 일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자전거를 즐겨 탑니다. 출퇴근도 주로 자전거를 이용합니다. 몇 주 전 팀에서 회식을 하게 되었는데 회식 장소는 회사에서 8km 정도 떨어진 어느 식당이었습니다. 그 식당에서 봉고차를 보내주었지만 저는 자전거를 타고 그곳까지 갔습니다. 처음 가는 길이라 지도 검색 프로그램에서 그곳까지 자전거로 가는 빠른 길을 찾아서 스마트폰에 저장시킨 후 그 길을 따라서 자전거를 타고 달렸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길이 좋았지만 점점 어두 컴컴한 골목길로 가더니 급기야 골프장 뒤쪽으로 있는 칠흑같이 어두운 산길로 가야 했습니다. 거의 등산을 하다시피 하는 산길이라 너무 힘이 들었고, 아무도 없는 산속을 자전거를 끌고 가느라 너무 무서웠습니다. 이 길이 과연 맞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순간 순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목적지까지 가는 길을 직접 검색했고, GPS를 볼 때 내가 지금 그 경로 위에 있는 것과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분명히 맞다는 것은 확실했기 때문에 어찌 되었든 계속하여 GPS를 확인해가며 나아갔습니다. 결국 산길이 끝나고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진 신나는 내리막을 달릴 수 있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 식당에 도착해서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일을 통해서도 깨달은 것은 내가 순간 순간 하나님의 인도하심 위에 서 있는가?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은 저의 내면에 항상 메아리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특히 이번 GPTI 훈련도 이제 중반기로 접어들었고, 많은 사람들과도 익숙해지고, 다양한 숙제와,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매너리즘에 빠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매주 숙제를 하고 보고서를 쓰는 것이 이제 조금씩 우물 파는 일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잇었습니다. 아무래도 제 마음 속에 이 훈련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던것 같습니다. 훈련 프로그램과 숙제가 저의 우물 파는 일이 되고 있었습니다. 사실 훈련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이 훈련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훈련이 끝난 뒤 어디가 되든지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우리가 있어야 할 우리의 가나안 땅으로 계속하여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해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는 저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물 파는 것에 목숨걸지 말게 하시고 어떤 포기와 내려놓음이 있다 하더라도 끝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갈망과 소원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궁금한 한국문화 중 하나

회사에서 차를 마시거나 점심 먹을 때 종종 경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돈 이야기가 나올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항상 나는 돈을 별로 못벌고 정말 가난하게 산다.. 라는 것을 진짜루 강조한다. 물론 농담성이겠지만 마치 돈좀 꽤 번다는게 드러나면 죄인이라도 되는양.. 그러면서 다른 사람한테는 집을 이사했다고 하면 우와 정말 돈 많으세요~ 연봉 킹! 이런 농담들이 오간다.

물론 나도 그중에 하나인듯.. 지난번 결혼할 때도 해외로 신혼여행 간다는 것을 왠지 숨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연봉 관련된 농담을 해도.. (사실 하면 안되는거지만..ㅎㅎ) 항상 나는 연봉 1500만원.. 나보다 경력이 훨씬 많은 어떤 과장님은 연봉 1200만원..

사람들의 이런 신기할 정도로 공통된 성향이 그저 우연히 나오는건 아닌것 같다. 마치 나이테 속에 그 나무가 성장했던 시기의 자연 재해 같은 일들이 고스란이 녹아 있듯이 이런 공통된 성향도 한국 특유의 문화인것 같도 그 배경엔 뭔가 이유가 있겠지… 정말 연구해보고 싶다.

자신을 무조건 낮게 여기는 유교적 문화 때문일까.. 아니면 20세기 들어 식민지와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굳어진 성향일까..

선교와 문화 인류학 (폴 히버트)

1. 책 소개하기

이 책은 폴 히버트라는 인도 선교사 출신의 저자가 쓴 책이다. 저자는 문화 인류학이라는 학문을 선교에 접목시켜 선교를 함에 있어서 반드시 가져야 할 문화적 측면에서의 통찰력을 전달한다. 특히 저자는 인도에서 사역을 하며 겪어야 했던 실수와 시행 착오를 이 책의 다양한 예제 케이스로 활용하여 읽을 거리를 풍부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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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워드 패턴화로 사이트마다 서로 다른 로그인 정보 사용

어제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학교 후배가 전화를 하더니 지금 네이트온을 쓰는중이냐고 했습니다. 우리 회사는 네이트온 접속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에 네이트온에는 거의 접속을 안하고 그날 근무중이라서 당근 안쓰고 있었는데요.. 지금 내가 200만원을 네이트온으로 요구했다고 내가 한거 맞냐는겁니다..ㅎㅎ 드뎌 나한테도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했습니다.

5분 후에는 태국에서 일하는 학교 선배가 국제전화로 전화를 해서 “나한테 반말로 200만원 달라고 한게 너 맞어?” 라고 했어요.. 일이 걷잡을 수 없이…ㅡㅡ; 급하게 아이폰으로 네이트온에 접속해서 (회사가 스마트폰을 통한 네이트 접속을 차단하지는 않았네요) 로그인해 있던 분들께 다 설명을 하고 네이트 패스워드를 바꿨습니다.

아무래도 3월에 있었던 네비게이션 업체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제 패스워드가 빠져나간것 같은데요.. 일반적으로 사용자 패스워드는 DB에 암호화해서 저장하는게 상식인데 도무지 이 업체는 패스워드를 평문으로 DB에 넣어놔서.. 이런 일이 생긴듯 합니다.

어쨌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착하다면 이런 일이 없겠지만.. 어쩔 수 없다면 사이트마다 패스워드를 다르게 해야 하는데, 사실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이트마다 수십 수백개의 다른 사이트의 패스워드를 다 기억하는건 불가능이죠.. 그래서 생각한게 “패스워드의 패턴화”인데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패스워드를 패턴화 하는겁니다.

[KEYWORD] + $ + YY + [FIRST 2 LETTERS OF THE URL] + [THE LAST LETTER OF THE URL]

위의 패턴을 설명하자면

  • [KEYWORD]: 자기 자신만의 키워드
  • $: 특수문자
  • YY: 연도값
  • [FIRST 2 LETTERS OF THE URL]: 사이트 주소의 처음 2글자
  • [THE LAST LETTER OF THE URL]: 사이트 주소의 마지막 1글자

만약, 나만의 키워드가 blue 이고, 2010년에 네이버 사이트의 비밀번호를 설정한다면
blue$10nar
이렇게 되겠죠…

daum.net 이라면
blue$10dam

옥션이라면
blue$10aun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연도값이 바뀌고, 나만의 키워드를 다른 단어로 교체하거나… 아니면 전혀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서 적용시킬 수도 있구요.. 이런 식으로 패스워드를 자신만의 패턴으로 쉽게 유추하도록 공식만 세워 두면 수많은 사이트의 패스워드를 일일이 기억할 필요도 없고 사이트마다 서로 다른 패스워드를 쓰기 때문에 개인 정보 유출 위험이 그만큼 감소되겠죠. 저는 이미 요즘 많이 쓰는 모든 사이트의 패스워드를 이렇게 패턴화시켜놨습니다. (그런데 네이버와 네이트 패스워드는 같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이트에 가입할 때마다 동일한 ID+PW 조합을 쓰는데 이는 보안상 쥐약인건 다 알면서도 수많은 사이트의 인증 정보를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위험성을 알면서도 그렇게 쓰죠..  제가 보기에 이건 쉬우면서도 꽤 괜찮은 방법 같은데.. 이런 방법 많이들 적용하셨으면 좋겠네요..

PS. 아이디어가 순식간에 떠올라서 패스워드 패턴화 서비스에 대한 특허를 생각해봤는데 특허 검색해보니 이미 2004년에 한 일본인이 국내에도 패스워드 패턴화에 대해 특허를 출원해서 2007년에 특허를 받았군요..;;

웨딩 홈페이지 오픈(?)

그동안 바쁜 일상 생활 중에 짬짬이 시간을 내서 만든 우리 웨딩 홈페이지를 공식 오픈(?) 합니다. 디자인은 외국 디자인 업체에서 무료로 배포하는 디자인 템플릿을 가져다 썼고 내가 한거라곤 사진 몇장 편집, 방명록 연동, e-청첩장 등.. 몇가지 없고 집중해서 하면 하루면 다 하는건데..
방명록이 너무도 썰렁하오니 많은 축복의 글 남겨주세요..!




웨딩 홈페이지로 가시려면 아래를 클릭하세요!

http://wayiam.com/wedding


감사합니다!

결혼이 ‘일’인가…? 사람과의 관계도 ‘일’인가…?

결혼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아직도 실감이 안난다.. 30년 넘게 내가 살아오고 있는 이 삶의 패턴이나, 사는 방식, 가치관… 얼마전 4주 과정으로 교회에서 하는 결혼 준비 교실을 통해서 많이 준비가 되기는 했지만 아직은 겁도 나고, 조금 더 준비하면서 천천히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역시.. 결혼도 정말 큰 일이다.. 주말마다 해야 할 것들이 쌓여있고.. 주중에도 정신없이 바쁜데.. 회사에서는 Burning Month라는 이름의 40일 전투…(내가 지은 이름임…)를 하면서 의무적인 야근을 하고 있다. 결혼을 한달 정도를 앞두고 이런 일을 당하다 보니 회사 동료들은 날 볼 때마다 결혼 준비는 잘되어 가나요… 결혼이 코앞이라 할 일도 많을텐데 어떻해요… 등등의 말을 항상 건넨다. 관심 가져주고 먼저 물어봐주는게 너무 고맙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물어보는 “결혼 준비”라고 하면… 말 그대로 집 장만, 혼수 준비, 청첩장, 사진 촬영, 이사, 신혼여행 예약 등등… 아무튼 중요하긴 하지만 정말 “일”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이다.

솔직히 난 결혼을 앞두고 burning month의 매일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제일 걱정되었던 것은 결혼 ‘생활’에 대한 준비가 힘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렇게 우리 둘 사이에 관계가 민감해지는 시기에 회사일이 바빠져서 잘못하면 소중한 관계가 망쳐지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난 솔직히 회사 동료 분들이 그런 우리 관계를 걱정해주고 그런 부분에서 조언도 해주고 했더라면 더 고마웠을것 같다.

솔직히 결혼=생활… 이라면 결혼 준비는 일이 되어야 하는게 맞는것 같다. 하지만 난 결혼이란게 두사람이 만나서 같이 살면서 돈벌고 밥해먹고 빨래하고 아이 낳고 키우고… 하는게 절대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결혼 준비’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내가 결혼 준비라는 말을 들으면 그런 실제적인 일 보다는 예비 부부로서 우리가 얼마나 영적, 육적으로 더 가까워 졌는지.. 서로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싸울것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 그런 생각이 떠오른다. 그리고 난 아직 그런 면에서 “결혼 준비”가 많이 되지 못한것 같아서 좀 두렵다. 생활?? 까짓거 준비가 많이 못되어도 살아가면서 필요한것 장만하고 돈도 열심히 벌고 하면 되는거겠지… (내가 세상을 너무 모르나…) 아무튼 그런건 별로 두렵지 않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굶겨 죽이시진 않겠지..ㅎㅎ)

“Burning Month”를 시작하며… 항상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 (살전5:16-18)

오늘 부터 회사에서는 Burning Month라는 이름으로 4월 말까지 밤 10시까지 강제적인 야근과 토요일 근무를 시작한다. 5월 초에 결혼식을 앞두고 이런 갑작스런 소식에 마음이 정말 좋지 않았는데 오늘 아침 출근길에 극동방송 God Family 연재 시간에 스트레스에 대한 말씀을 들었다. 어떻게 보면 결혼을 한달 앞두고 닥친 조금은 어이없는 일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내게 직접 말씀하고 계심을 느꼈다.

이 세상에 스트레스를 떠나 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느끼는 스트레스의 수준은 그가 당면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40인분의 요리를 준비하면서도 그 일을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두세 명의 손님을 청해 놓고도 걱정 때문에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서의 일 때문에 일주일 내내 스트레스를 받다가도 토요일만 되면 그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된다고 생각 합니다. 사실 토요일에는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그 동안 밀렸던 집안 청소도 하고 밖에 나가 친구들도 만나고 영화도 보게 되면서 평일보다 더 바쁘게 지냈는데도 말입니다. 그것은 토요일에는 이야 말로 출근하는 날에 느끼는 책임감과 부담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런가 하면 좋은 일 앞에 서도 스트레스를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 좋은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너무 긴장 한 채 손이 떨리고 손바닥엔 땀이 나고 입이 바싹 마르는 사람 말입니다. 이처럼 문제는 상황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생각과 삶 모두가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에 달려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모든 일이 주님을 위한 일이고 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는 확신 속에서 항상 기도에 힘쓰면서 그 일들을 기쁨으로 감당 할 수 있을 것입니다.

From GodFamily (http://bit.ly/aPIq5z)